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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예님이 이번에 써주신 조각글 읽고 꽤 생각을 많이 했다. WOD 뱀파이어의 Path시스템이 생각나서. 어디였던가에서 WOD 시스템이 여러가지 '사고 방식'들을 모더니즘 식으로 선악의 가치를 두지 않고 늘어놓는 스타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관점을  비판하려는 시도였다나 어쩠다나라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은혼은, 특히 양이 3마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가 같이 떠오른다. Path시스템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뱀파이어들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상태에서 'Humanity'라는 가치 대신에 다른 가치를 -악의 대변인, 기사, 혹은 검은 짐승의 길-선택하는 것을 시스템 화 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실, Path시스템의 예시는 지금 보면 좀 유치해서 글 쓸 때 그냥 적용시키기는 그렇지만 대강 인간적인 길이 아닌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주는 도구 같다. Humanity라는 개념에서 제일 재미있는 점은 휴머니티-양심-의 기준선이 높으면 높을 수록 빨리 더럽혀진다는 점이다. 휴머니티 10점 만점에 10점인 경우에는 거짓말 한 마디만 해도 바로 9점으로 떨어지지만 6점의 경우에는 왠만큼의 사악한 짓을 해도 그냥 그대로 유지가 된다.

에, 대강 분류하자면 다카스기는 이미 Beast의 루트를 탄 것 같고, 긴토키는 자기 나름대로의 길을 걷고 있고, 즈라는 이 중에 유일하게 휴머니티로 쳐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즈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휴머니티 점수가 높아서였나보다. 쨌든 즈라는 휴머니티만 높은 게 아니라 그놈의 무사도 점수도 높아서...대개 뭐든 딱딱한 원칙에 강한 녀석이기도 하고, 또 그걸 지켜내며, 사실 거기에 일점 흔들림이 없이 동화될 수 있을 때 가장 강하다. 그러나 그런 모순되는 원칙들을 전혀 모순없이 수행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그게 나름대로 매우 진심이라는 점에서 보는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게 내 감상이었다. 시발 이것은 바로 토요일에 죄를 짓고 일요일에 회개하는 기독교도의 모순과도 매우 닮아있지 않은가. 아무리 내가 회개하는 법도 잊어먹은 날라리 신자지만 이게 일단 연상된다는 점에서 내인생 Fail....

사실 이미 소라치는 원작에서 즈라를 어딘가 움직이고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그건 아마 홍앵편 언저리에서 멈췄다-메타 캐릭터로서 더 즐겁게 활용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나름대로 진지한 모습도 보여줬던 렌호 편에서도 마지막에 이 캐릭터는 속을 알 수 없는 일종의 캐리커쳐 화 되어 독자와 거리를 벌인다. 즈라의 모티브가 동화 혹은 그림 연극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 쪽 의미가 있는 것 같고. 팬인 입장에서는 '캐릭터' 로서의 역사 축이 좀 움직여 줬으면 하지만 아마 그건 여전히, 완결까지는 힘들어 보인다. 암튼 모순을 의식하고 있을 때의 즈라는 아무 것도 못하지만 두 가지 다 하고 있을 때의 즈라는 매우 정신나간 것 처럼 보이고, 좀 더 크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마음에 든다. 조금 '저는 어제 거짓말을 했습니다' 라고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아이같은 천진함이 무섭긴 하지만(....) 목적만 이룰 수 있으면 진짜 자기희생 포함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외도도 걷는 점도 좀 웃기지만(....)

진실 중에는 말갛게 비쳐보이는 얇은 유리 안에서 살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 안에서 억지로 꺼내면 안되고 그저 이해가 갈듯 말 듯 해도 꺼내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오늘 어디서 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대개 그 모양인 것 같다. 비록 내가 그런 것들을 분석하는 훈련을 학교에서 받았지만 말이다. 즈라라는 맑다기보단 말간 캐릭터와, 이시다 아키라의 뭐가 뭔지 좋은지 나쁜지 잘 알수 없는 보이스와, 즈라신-다카즈라의 정의내리는 것도 힘들고 결말도 안나는 관계를 좋아하는 것도, 모더니즘 소설에 애증이 있었던 것도 이 방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규칙이라면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내가 규범에 맞춰서 사는 게 태어난 목적같은 카츠라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 건 꽤 신기하다.

아, 그리고 은혼 41권 렌호편은 즈라엘리였다. 이럴수가 작가와 내가 리버스라니, 원이님 어쩌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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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ai 2012/05/03 03:01

 

Ist das nun mein Lohn,
 undankbarer Sohn?
Mir allein verdankst du Krone, Macht und Thron.
Hart zu sein und streng,
war nicht leicht für mich.
Ich hab mich gezwungen
stark zu sein für Dich.
Wer die Pflicht vergisst,
muss zu Grunde gehn.
Erst, wenn es zu spät ist
wirst du es verstehn.
Mich verstehn.

지금 이게 나에 대한 보답이냐?
은혜를 모르는 아들아
네가 감사해야 하는 건 오직 나다
왕관, 권력 그리고 옥좌에 대해
강해지는 것과 냉엄함은
내게도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극복했었다
너를 위해서 강해지려고
의무를 내팽개치는 자는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다
너무나 늦은 후가 되겠지
네가 이것을 이해한 후엔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트위터에도 간략하게 썼지만 6년간 이 뮤지컬을 파면서 의외로 가사가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스터디까지 했는데도 기본 문법도 하나도 안 남아있는 것에 놀랐다. 이런 식으로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은 절반 정도는 워낙 방만한 내 성격 탓이고, 절반 정도는 뭐든 지 안정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언어인 영어나 이럭저럭 투자한 바가 많은 스페인어가 아닌 상태에서 어디까지 습득이 가능할 지, 투자할 지가 불문명한 독일어를 배우는 것 자체에 부담이 컸던 탓이다. 아무튼 세월은 흘러흘러 나는 아직도 이 하루도 안 빼놓고 덕국어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있으며, 6 년간의 내 투자는 이제 계를 타기에 이르렀다.

확실히 적극적으로 언어 공부를 하기에는 하일트님의 우월한 번역을 참조하는 편이 너무 편해서 거기에 의존한 바도 컸다. 옛날 일이지만, 이 뮤지컬을 보기 전에 나는 독일어를 배운 적은 커녕, 도서관 알바 하던 시절에 독어 잡지도 제자리에 못 갔다 놨을 정도니 내 정열에 대해서는 스스로 기특할 정도다. 일단 엘리자베트 대본을 내 나름대로 천천히, 느릿느릿 번역을 해볼 생각이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언젠가 한국이 아닌 나라에 가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외국어를 습득하고 싶다.

노래 자체에 대해서: 벨라리아는 별궁이라는 의미로 엘리자베트 2부 중반, 드디어 새파랗게 젊은 며느리에게 권력을 빼앗긴 왕궁의 유일한 남자 조피 황태후가 괴씸한 아들을 향해 부르는 노래이다. 검은 옷으로 온 몸을 감싼 권위에 쩔은 여자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마녀 타입- 에게 리바이-쿤체 콤비가 하악대는 걸 레베카에 와서야 깨닫다니 나도 어지간한 멍청이다. 이 아저씨들, 이런 타입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거 틀림없어. 조피는 의무에 충실해야한다고 무시무시한 경고를 아들에게(그리고 사실 극 중 의미로는 또 다른 어머니이자 의사적인 의미에서 그녀의 딸이기도 했던)씨씨에게 날리고 있다. 그녀의 저주아닌 저주는 후에 극 중에서 루돌프 황태자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실현되기에 이른다. 번역이나 한국 번안 가사로는 이 가사가 그저 처량맞은 한탄으로 느껴졌지만 독어 원어 가사는 에스트레소 원액을 들이킨 것처럼 쓰리고 아프게 독하다. 그리고 그 모든 저주와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진정으로 바란 것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이었다는 점까지, 원어 가사의 여운은 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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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ai 2012/04/28 20:32
1. 책 통판이 애매하게 들어온다. 실로 고민거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월에 들고 나갈 책들 재고가 한뭉텅이다. 이쯤이면 테이블에 다 놓이기나 할지 걱정이다.

2. 지난 일년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의 분노는 참으로 싸구려구나 싶기도하다. 한 때 블로그에 올리는 글 한자 한자에 잘남을 과시하고 싶던 옛시절도 있었지, 훗. 아무튼 날 우울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내 삶을 싸구려 카피본으로 만들어 버리지나 않았나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흉내내어 봐야 제대로 될 수도 없을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장점도 잃어버린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by viai 2012/03/09 00:41


짤방은 아가씨다움을 추가하기 위한 오리페코의 홍차와 크림 브륄레

직장일에 치이면서 갈수록 늘어져가는 뇌세포를 회복하고 조금이라도 기록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트위터를 잠시 끄고 블로그로 돌아왔다!

1. 밀레니엄
구정 정초부터 보러간 올해의 첫 영화. 정초부터 보러가기는 좀 문제가 있지 않냐...고 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사정이 틀어지기 전에 무려 어머니와 보러갈 계획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어머니와 가족 영화로 보기에는 영 무리가 있는 영화였다. 거기다가 몸에 무리가 간 상태에서 억지로 보느라고 힘들었다. 사실 원작과 영화가 둘 다 있다면 원작 소설 쪽을 훨씬 높이 치는 편이라서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스웨덴 판 못 본게 아쉽다. 루니 마라가 리스베트 살란데르라는 Goth 캐릭터를 아카데미 시상식에 올린 게 이 영화의 의의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2.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솔직히 이 영화도 피곤한 상태에서 무리해서 본 터라 회색의 영상이 아름다웠다는 기억 밖에는 안 남아있다.(이래서 블로그에 영화 감상문이라도 쓰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솔직히 기승전스마일리호모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전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라온 스파이를 본 후라 나에게 르 카레의 작품은 '스파이를 1회 용품처럼 쓰고버리는 세계에 대한 우울한 이야기' 연작이다. 인상이 희미했던 조지 스마일리가, 그래서 이 영화의 최종 승자라는 것이 좀 뜻밖이었다. 조지 스마일리는 전작에서는 거의 악역 아니었나!? 나에게는 스마일리의 '칼라'에 대한 선의가 돌고 돌아서 결곡 이 비정한 세계에서 조지 스마일리의 힘이 되어주었다고 본 지라 그 아이러니는 꽤 마음에 들었다.

3. 장화신은 고양이
.....스페인계 무대였다는 게 충격과 공포였다. 그 점이 딱 좋았음.

4. 내가 사는 피부
장화신은 고양이가 저런 무대 배경이라는 걸 모르고 간  거였다면, 이번 영화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나 올해 벌써 이 아저씨가 나오는 영화를 두 편이나 봤다! 한 편은 목소리 출연이지만) 스페인이 나올 걸 기대하고 간 영화였다. 알모바도르 영화 치고도 좀 번잡한 느낌의 영화여서 대체 뭔 소리를 하자는 건가...라는 감상만 남아 있었다. 원작의 스톡홀름 신드롬을 애써 부정한 결말과 '어디에 갇혀있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요가 수업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가 <이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던 레즈비언 여인과 다시 만났다>는 어느 평론가의 해석을 보고나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by viai 2012/03/03 19:49
1. 영국 괴물 vs 프랑스 괴물 -goth를 중심으로

영국 괴물
고딕 쪽 따지려면 브론테 시스터도 다뤄야 하나?
드라큘라, 제인 에어, 프랑켄슈타인. 레드클리프 부인이나 수도원장 봐야됨.
일단 영국 고딕에 대한 정의부터 해야하고 dheap novel 있으면 구해서 봐야됨. 야 신난다!

타자, 외부인.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으며 이름이 없는 것들'에 대한 공포.
결말: 괴물을 때려잡는다. 괴물이 자멸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폭풍의 언덕?
원죄의식이 느껴지고 등장인물들은 그에 따라 '괴물'에게 고통받는다. 기독교 사상의 영향.




by viai 2012/03/02 23:12

1. 트위터를 일주일 간 잠궈두기로 했다. 일단 저기는 너무 즐겁고, 또 볼게 너무 많고...말도 안되게 쪽팔리는 글들을 올리기엔 다소 사회적 체면과 기타등등을 고려해야 하니까.

2. 네우로 온리전 후기라던가, 긴글을 조금씩이라도 써볼까.

3. 내가 무척 재능도 독창성도 하나도 없는 인간, 형편없는 글장이로 여겨진다. 다른 사람의 빛을 반사하는 게 고작인. 실제로는 외부의 영향을 아주 안 받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튼 지능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달린다는 건 인정하기가 참 싫다.

4. 나는 강하지 않고- 징징대는 포스팅을 남기는 인간이지만,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보다도 깊이, 블로그에 밀을 토해놓는 것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5. 어쩌면 배신당한 것은 내쪽이지만. 그러나 핏속을 떠도는 말 한마디가 있었고 그것이 내 혈관을 낚시바늘 처럼 찢어놓고 있었다. 그 쇠 냄새를 견딜 수 없어서, 그 말을 더 이상 전할 수 없다면 최소한 토해내기라도 하고 싶었다. 미안해, 라고.

6. 반부스 얻었던 뮤지컬 연극 온리전 부스가 졸지에 한부스 혼자 쓰게 될 상황에 처했다. 이번 행사에는 놀러올 지인들도 없는데 외로워서 행사 어떻게 뛰지. 책이나 다 팔렸으면 좋겠다. 덜덜덜.

7. 올렉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노래들 감상이나 천천히 올려야겠다. 마음이 허해서 그런지 곡들이 괜찮은 게 좀 있다. Игра в любовь는 좋음. 작곡실력 나아졌구나, 올렉.

8. 무정하구나, 로리타.

9. 셜록은 하도 정신없을 때 봐 놔서, 바스커빌의 개는 거의 인상이 희박하고, 라이엔바흐도 그렇게 멘붕하면서 보질 앟았다. 이미 정신이 붕괴된 상태에서 뭐가 문제였겠냐. 사실 난 셜록이 소시오패스건 아니건, 천재성에 눌려 모리어티랑 같이 동반자살을 하던 말던 그렇게 크게 관심이 없다. 추리소설을 극단적인 인간 감정의 장으로보지 논리 게임으로는 즐겨본 역사가 없는 나인지라, 딱히 추리물로서의 부족함도, 셜록 홈즈 원전 해석에 대한 모팟의 모자람도, 탁월함도 관심없다. 단지, 2기는 셜록 홈즈라는 이름을 한 냉막한 인간이 패배를 인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극이었고, 난 싸움에서 지고서 그걸 인정하는 그의 표정들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좋아했던 화는 201화. 그런데 막상 이걸 극으로 좋아한다기보단 오랫동안 마음을 막고 있던 어느 페어에 대해서 변명(?)을 해주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는 게 더 정확할 거다. 많은 사람들이 미스트리스 아이린 애들러가 셜록 홈즈에게 패배한다는 각색에 분노하는 바이지만- 차가운 이성과 마음을 끝까지 내보이지 않으면서 흥정에 성공한 셜록 홈즈가 이긴 게임이 아니라는 점이 난 좋았다. 아이린 애들러는 끝까지 '보는 자'이자 사물의 가치에 빛을 부여하는 자였고, 셜록은 그녀의 대상물이었으니까.

양상은 다르지만 세츠마리나, 다카스기 신스케 + 카츠라 페어, 그리고 셜록 홈즈와 아이린 애들러까지 난 '서로 반대이기 때문에 끌리지만 서로가 자기 자신인 한은 결코 맺어질 수 없는 페어'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죽음과 엘리자베트도, 약간 그렇지. 그래도 서로에게 매혹될 만한 요소가 있는 것이 좋다.

즈라 + 이쿠마츠나 써야지. 이쪽이 그나마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페어다. 살류.

10. '나는 당신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단지, 당신의 일부가 나와 죽어주기를 바랬다. 당신이 죽지 않을, 바로 그 경계를 넘어가기 전의 순간까지 조금더, 조금더, 조금더, 당신의 정신 속에, 독을 흘려 넣고자 했다.'

우리집 애들이나 한 벌 맞춰야겠다, 그리고 향이라도 피워놓고 푹 자야지.
by viai 2012/02/25 01:24

by viai 2012/02/24 23:54
잠시 블로그 쉬겠습니다. 원고 마치면 돌아올게요.
by viai 2011/11/28 20:33

그들의 이름이 다소 괴상하다고 해도 놀라지 말라. 어차피 이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유행에 뒤쳐지게 되어있는 도구다. 그보다는 그들의 이름에 담겨있는 뜻에 주목하도록하자. 태어난 자는 무릇, 이 세상에 그 쓸모를 지니는 법.

통제사가 길러낸 세 제자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한양 문 밖에 사는 선비인 벽계수, 문 안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는 은하계,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며 지내 거주지가 일정치 않던 고적삼. 물론 이 이야기에는 이들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이들보다도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가 있었다. 통영에서 이들과 함게 올라와 적삼과 함께 다니며 일을 도모하는 동지 역할을 한 암살자 반쇠가 바로 그 네번째 인물이다. 반쇠라는 이름에도 역시 그 임자의 직업과 재주에 대한 실마리가 숨어있다.
by viai 2011/11/24 02:14

 

흰 바탕에 아래 반이 검고, 붉은 원으로 장식을 해 단 연은, 우아한 곡선의 궤적을 그렸다 청량한 가을 공기를 타고 끝도 없이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올랐다. 연이 떠 있는 곳 아래에는 가을 하늘 만큼이나 맑고,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통영과 섬을 잇는 배가 오가는 포구의 방파재 위, 도포를 차려입고 하늘과 땅 중간에 서 있는  양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바로 연의 주인이었다. 허나 그는, 그저 주인일 뿐 연을 띄워내고 조종하고 있는 자는 아니었다. 양반 옆엔 더이상 그에게는 불가능한 잰 솜씨로 연을 띄우라 시키기 위해서 대동하고 나온 시동이 있었다. 연을 마치 제 수족처럼 다루고 있는 소년은 초라한 장인 도제의 옷차림이었다. 바닷 바람에 몇 천번 좋이 씻겨져 닮아버린 듯한 표정은 이 근방에서 몇십년을 살아낸 뱃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그것과 닮아, 열 서너살 정도 되어보이는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으리만치 초연했다.

"야, 이눔아. 니 연 참 잘 날리는 구마."
"나리를 위해서 연을 날리라고 웃 돈 까지 받았는데 어찌 잘 날리지 않을 수 있소?"
"허허, 뭐 나는 평생에 손 놀리는 일에 재주가 있어본 일이 없는기라, 연 장인 아들내미 솜씨를 좀 빌리면 어떻겠노? 근데, 니 서울말 쓰나?"
"그렇소. 그래도 내가 공방에서 배운지 삼 년인데, 연 날리기 써비스까지 해줘야 되는 손님은 귀하가 처음이외다."
"써비스? 써비스가 뭐꼬?"
"양인들 말로 노력 봉사, 뭐 그런 뜻이오."
"니 우째 그런것도 아나? 참 신기한 아다, 니도."
"신기할 거 없소."
"마, 무뚝뚝하기는. 야야, 저기 보그래이. 니 저 분이 누구신지 아나?"
"......."

양반이 가리킨 손가락 너머에는 방금 아이 셋을 거느리고 막 배에서 내린, 역시 흰 옷을 입은 선비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연신 떠드는 아이들의 말에 웃으면서 이쪽으로 그 흰 옷의 남자에게 양반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아이고, 나으리. 으찌 나오셨습니까?"
"오래간마이네요. 아들이 간만에 뭍에 좀 와보고 싶다케서 잠깐 몰래 빠져나왔십니다. 정식으로 건너온 게 아이니까, 딴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좀 해주이소."
"마, 여부 있겠십니까. 잘 살펴 가이소."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 흰 옷의 남자를 보낸 양반은 멀어져 가는 남자와 아이들을 한 참 바라보다가 옆을 지키고 서 있는 소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니는 어른 보고 인사도 안 하나?"
"내 저 분 누군지 모르오."
"니 진짜 통영 놈 맞나? 우찌 통제사 어르신을 모르노?"
"정치에 관심없는 아이 놈이 뭘 알겠소?"
"아야, 이제 골치가 아플라 그란다. 니는 말투가 왜 그 모양인데?"
"예의를 못 배웠는데 어쩌겠소?"
"잘-났다, 계속 씨부리라."
"......"

"즈 아아들도 니 또래구마, 그래. 아니, 니가 좀 어린거 같기도 하다. 저 서울말 쓰는 아아는 안동서 집안이 망하는 바람에 여까지 왔다카는데, 원래 통제사님이 직함이 아직 읎으실때 춘부장이 학문을 좀 배우신 인연이 있다카드라고. 글고 저 머리 허연 아는 바다 섬에서 통제사님이 다니시다가, 줏어오싰대. 다들 귀것이라카고 키우신대는 걸 말맀는데, 뭐가 좋은지 그르케 이뻐하신다드라고. 그리고 저 이쁘장하고 눈 치켜올라간 아아는..."

"알고 있소. 통영 제일 갑부집 외동 아들인데 모르겠소. 저 집 어르신이 우리 공방에 전에 연을 주문하시느라 오셨을 때 만났소."

"그르나? 암튼 돈 되는 일은 니도 잘 아는기구마. 그래, 저 아아가 그리 집안에서 금이야 옥이야 하는 아가 아이가. 근데 통제사 으르신을 딱 한 번 뵙드니 인품에 반해슨지 졸-졸 쫒아 댕기느라 집에도 안 갈라캐. 그래서 아에 집안에서 으르신에게 사정사정해서 즈리 돌봐주신다 안카나."

"그것도 알고 있소이다."

"암튼 그라서 아아들이 저리 맨날 셋이 붙어다닌다 카드라고. 어떠나? 나중에 지나가실때 즈 행님들하고 니  말이라도 좀 터 볼래?"

"됐소. 안 그러겠소."

"와? 뭐가 불만이고?"

"반상의 구분이 있는데 내가 어찌 끼겠소?"

"니는 아아는 똑똑한 긴데 와 말하는 게 그따구고? 치아라. 이제 내는 그만 들어갈란다. 대금은 반쇠 니한테 줄끼니까, 잘 전해드리라?"

"그러시오."

무뚝뚝한 소년의 표정은 대화 내내 미동도 없었다. 도포를 펄럭이며 먼제 돌아서 집으로 간 양반과 헤어져서 한참 걸어, 골목이 좁아지는 곳까지 가 닿아서도 전혀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연뿐만 아니라 통영의 온갖 장인들이 모여있는 십이공방이 이 주변에 흩어져서 하나의 구역일 이루고 있었다. 총명할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장인들의 친인척 관계의 중심점에 서 있기도 한 소년은 십이공방의 모든 기술을 거의 다 배워가고 있었다. 나전칠기, 갓 짜기, 발 엵기, 연 만들기, 장석 깍기. 소년이 익힌 것은 단순히 공방기술 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위험한 기술, 즉 대나무 한 줄기로 사람의 몸에 박힐 가장 날카로운 침을 만들어내고, 약을 다루어 목숨을 위급하게 하는 기술까지가, 소년이 배워 익힌 것이었다.

집안 한 구석, 제 방에 들어온 소년은 오죽을 꺼내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방금 스쳐지나친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의 스승을 위해서 주문한 발을 엮기 위해서이다. 온갖 전술에 능하고 기품있는 그 젊은 통제사는 통영 전체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어두운 구석에서 전해지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소년은 통제사가 너무 앞서나가는 사상을 갖고 있기에 적도 많은 입장이란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뿐이랴. 점점 나라 전체에 외부에서의 어둠이 퍼져나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군부 한 곳의 책임자란 것이 얼마나 위태한 자리겠는가. 소년은 묵묵히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나갔다. 연하게 휘어지는 검은 대나뭇 발은 마치 아까 본, 자신보다 한 두 살 더 연상인 소년의 윤나는 머리칼을 연상시켰다.

 
삼 년후, 결국 통제사는 정쟁에 휘말려 참수되었고, 통제사의 제자들도 통영을 떠났다.듣기로는 전주 근처에서 일어난 운동인지 의병인지에 참예하였다 했다. 그 즈음 기술을 완성하고 거의 어른으로 장성한 반쇠는, 연장 일습을 챙겨들고 길을 떠났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의 매운 손 끝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에든 무수히 많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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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양의 리퀘스트로 외가의 근거지을 농락해 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와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은혼 어레인지는 과연 시도해도 될 소재인지 미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 통영의 흥망과 일본의 정세는 사실 떼놓을 수 없는 애증관계라서요. 혹시 신경이 쓰이신다면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바랍니다.

12공방의 배후에 사실 숨겨진 공방인 제13공방이 있고 그 곳에서 온갖 기술을 겸비한 암살자를 키운다는 설정은...솔직히 마음에 꽤 들긴 하는데 이걸로 뭔가 진짜 썼다간 한 대 맞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갸악.

by viai 2011/11/05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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